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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안

감탕나무

Ilex integra · Elegance female ho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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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과
감탕나무과(Aquifoliaceae)
생장형
교목형(상록 활엽 소교목) · 상록
한국에서
자생(한반도에 저절로 자람)
자생지
중국 북부~남부; 한반도에서는 전라남북도, 제주, 경상남도, 경북 울릉도에 분포한다.
크기
최고 높이 10.0m (참고 자료에 기록된 값)
수형
줄기는 곧게 서고 가지가 빽빽하게 난다.
암수
암수딴그루로 3~4월에 황록색 꽃이 피며, 암꽃은 1~2개, 수꽃은 여러 개씩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암꽃의 수술은 꽃잎보다 짧고 수꽃의 암술은 훨씬 작다.

생김새

잎
어긋나기 — 두꺼운 타원형·긴 타원형 또는 긴 타원상 거꿀달걀형으로 크기 5~10×2~3.5㎝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톱니가 2~3개 있다.
꽃
3~4월에 지름 8㎜의 황록색 꽃이 잎겨드랑이에 피며, 꽃받침조각·꽃잎·수술은 각 4개다.
열매·씨앗
핵과는 둥글고 지름 1~1.2㎝이며 8월 중순~11월 초에 붉게 익는다.
수피
회색이며 처음에는 평활하나 점차 거칠어진다.

생태와 쓰임

생태
성장이 느리고 맹아력이 강해 강한 가지치기에 견딘다.
쓰임
목재는 세공재로, 나무껍질은 끈끈이(점착 물질) 원료로 쓰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병해충
그을음병과 깍지벌레의 피해가 심하다고 기술된다.

기록과 전승

감탕나무과 관련된 역사 기록과 전해 오는 이야기를 출처가 말한 범위 안에서 옮겼어요. 전승은 사실 여부와 별개로 전해지는 이야기예요.

  • 기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완도 예작도 감탕나무(정의: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가 198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나이 300년 추정, 높이 15m, 가슴높이둘레 2.7m였으며 가지가 동서 24m·남북 26m 정도 퍼져 있었다고 쓴다. 2012년 태풍 볼라벤 피해 이후 급격한 수세 약화로 고사되어 2019년 7월 5일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적는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완도 예작도 감탕나무'
  • 기록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감탕나무 껍질을 물속에서 썩히면 끈적끈적한 물질이 남는데 이를 나뭇가지에 발라 새를 잡는 데도 쓴다고 하며 반창고의 기초제나 페인트에 섞기도 했다고 쓴다. 우리나라 감탕나무 중 가장 큰 나무가 완도군 노화읍 내송리에서 자랐는데 198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태풍 볼라벤 피해 이후 고사되어 2019년 7월 5일 지정 해제되었다고 적는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감탕나무'
  • 기록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공개 API는 '완도 예작도 감탕나무'의 소재지를 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산100-23 외로, 지정해제(2019-07-05)로 표시한다. 설명은 나이 약 300년, 높이 11m, 가슴높이 둘레 2.68m이고, 200여 년 전 처음 정착한 홍씨와 김씨가 마을을 지켜 주는 당나무로 모시기 시작해 새해마다 제사를 지내며 행운과 풍어를 빌었고, 위쪽 소나무를 할아버지당, 감탕나무를 할머니당이라 불렀다고 한다고 쓴다.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공개 API 상세(천연기념물 '완도 예작도 감탕나무', 지정 1983-08-23, 지정해제 2019-07-05)
  • 전승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200여 년 전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홍씨와 김씨가 이 나무 앞에서 가정의 평화와 풍어를 빌면서 제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 뒤 마을이 형성되면서 동제로 발전했다고 하며, 음력 정초에 감탕나무와 커다란 소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는데 마을에서는 소나무를 할아버지당, 감탕나무를 할머니당이라고 부른다고 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완도 예작도 감탕나무'

참고 자료

최종 확인 2026-10-17

같은 감탕나무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