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을 산 용문사 은행나무
장소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 경내지도에서 보기위치·지정 정보

한눈에
- 나무
- 용문사 은행나무
- 수종
- 은행나무 (Ginkgo biloba)
- 장소
-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사 경내
- 시대·나이
- 수령 1,100년 추정 · 지정 1962년
- 찾아가기
-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는 나무예요.
이야기
경기 양평 용문사 경내의 은행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국가유산포털 지정일 1962.12.07).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수령을 1,100년으로 추정하며 생존한 국내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높이 41m·가슴높이 줄기둘레 14m로 소개한다. 전승으로는 신라 마의태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꽂혀 살아났다고도 전해지고,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 벼슬이 내려졌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모두 공식 해설이 전승으로 소개하는 이야기다.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절에 불을 질렀으나 나무만 해를 면하고, 소실된 사천왕전을 대신하는 천왕목의 역할을 해 왔다고도 전해진다. 해설은 나무가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고 줄기가 약12m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다고 설명한다.
기록과 전승
기록은 기관·자료가 확인한 내용이고, 전승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예요.
기록
- 국가유산포털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로 등재하며 지정일 1962.12.07, 소재지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용문사, 관리자 양평군으로 기록한다.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청)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09-24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용문사 은행나무 높이 기록이 63.6m(1919년)·60m(1962년)·67m(2000년)로 서로 달랐으나 최근 광파기 측정으로 41m이며, 키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간의 측정이 부정확했다고 본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문화재단)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10-05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줄기가 지상 약 12m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고 아래쪽에 혹 같은 큰 돌기가 있으며, 수세가 나쁘지 않아 지금도 사찰 측 이야기로 약 2~3가마의 은행이 열리고, 나무는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있으며 가까운 계류 때문에 수피에 이끼류·양치류가 많이 붙어 있다고 설명한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문화재단)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10-05
전승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용문사 은행나무의 수령을 1100년으로 추정하고 생존한 국내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소개하며, 높이 41m·가슴높이 줄기둘레 14m로 표기한다. 전승으로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손수 심었다고도,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고도 전해진다고 소개하고,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싣는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문화재단)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09-24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경순왕이 스승 대경 대사를 찾아와 심었다는 이야기,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절에 불을 질렀으나 이 은행나무만 해를 면했고 이후 불탄 사천왕전을 대신하는 천왕목 역할을 해 왔다는 이야기, 세종 때 정삼품 이상 품계에 해당하는 당상직첩 벼슬이 주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문화재단)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10-05
-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나무를 자르려 톱을 대자 피가 쏟아지고 하늘이 흐려지며 천둥이 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 큰 소리로 알렸으며 고종 승하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지고 8·15 해방과 6·25 전쟁 때도 이상한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문화재단) —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확인 2026-10-05
이야기 전체 보기
이 나무 알아보기 — 은행나무 Ginkgo biloba
부채 모양 잎과 두 갈래씩 갈라지는 잎맥이 특징이며 가을에 잎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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