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는 제관을 막으려 산신을 마을로 — 산천단 곰솔
장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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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천단 곰솔 군
제주 제주시 516로 3041-24 (아라일동)
찾아갈 때는 보호 울타리 밖에서 보고, 가지를 꺾거나 나무에 오르지 않아요. 마을 안 나무는 주민의 생활 공간이에요.
한눈에
- 나무
- 제주 산천단 곰솔
- 수종
- 곰솔 (Pinus thunbergii)
- 시대·나이
- 1470(조선 성종 원년, 제단 이전), 1908(폐지), 광복 후 부활, 1997(비석 발굴)
이야기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 따르면 한라산신에 대한 제사는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서 올렸는데, 겨울철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 죽는 일이 있었고 날이 사나우면 올라갈 수 없는 날이 많았다. 백성들의 이러한 고충을 없애기 위해 조선 성종 원년(1470) 제주 목사 이약동이 소산봉 아래 지금의 자리로 제단을 옮겨 설치했다. 한라산신제는 1908년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광복 이후 산천단 마을 주민들에 의해 부활했고, 2011년 기념물 지정 이후로는 아라동 주민센터와 한라산신제 봉행위원회 주관으로 지내고 있다. 제단 주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8그루가 자란다. 국가유산청은 조상들이 이 곰솔을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에 있는 나무라 믿어 신성시했다고 기록한다.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아시아경제, 2020)은 곰솔 가운데 가장 큰 나무의 키가 30m에 이르고 가슴높이 둘레가 4m가 넘으며, 이약동과 산천단의 사연이 세상에 다시 드러난 것은 1997년 곰솔 숲 공터에서 이약동이 세운 비석이 발굴되면서라고 썼다.
이 이야기의 출처 — 기록과 전승 4건
기록은 출처 자료가 사실로 적은 내용이고, 전승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예요.
기록
- 겨울철 제물을 지고 백록담에 오르던 사람들이 얼어 죽고, 날이 사나우면 오를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 고충을 없애려 조선 성종 원년(1470) 제주 목사 이약동이 소산봉 아래 지금 자리로 제단을 옮겼다. 한라산신제는 1908년 일제에 의해 폐지됐다가 광복 후 산천단 주민들이 부활시켰다. 2009년 아라동 이관을 거쳐 2011년 기념물 지정 이후 아라동 주민센터와 봉행위원회 주관으로 지낸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한라산신제단 · 확인 2026-10-04
- 날씨가 춥고 길이 험해 제물을 지고 오르는 사람이 얼어 죽거나 사고를 당했다. 1470년(성종 1) 부임한 목사 이약동은 이를 알고 지금 위치로 옮겨 산신제를 지내게 했다. 제단 주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8그루가 자생한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산천단 · 확인 2026-10-04
-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은 아시아경제(2020-02-26) 칼럼에서 산천단 곰솔 가운데 가장 큰 나무의 키가 30m에 이르고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4m가 넘으며, 이약동과 산천단의 사연은 1997년 곰솔 숲 공터에서 이약동이 세운 비석이 발굴되며 다시 드러났다고 썼다.
아시아경제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한라山神은 왜 산천단으로 내려왔을까 (2020-02-26) · 확인 2026-10-04
전승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천연기념물 제주 산천단 곰솔 군)의 해당 내용: 제주 산천단에는 수령 500~600년(지정일 기준)으로 추정되는 곰솔 8그루가 있다(천연기념물). 조상들은 천신이 인간세상에 내려올 때 큰 나무에서 잠시 쉬어 내려온다고 믿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이 곰솔을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의 나무로 신성시해 보호해 온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천연기념물 제주 산천단 곰솔 군) · 확인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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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알아보기 — 곰솔 Pinus thunbergii
짙은 녹색 바늘잎이 두 개씩 묶이고 끝눈은 비단털 같은 흰색이다. 나이가 들면 수관이 불규칙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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