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channel><title>그루안 GRUAN 나무 이야기</title><link>https://gruan.co.kr/</link><description>나무 한 그루에 담긴 이야기를 캐릭터로 만나고, 출처를 확인한 나무도감으로 잎·꽃·열매·수피 특징을 알아보는 그루안 나무 노트.</description><language>ko</language><lastBuildDate>Thu, 15 Oct 2026 00:00:00 GMT</lastBuildDate><item><title>&quot;저는 이 모과나무처럼 쓸모없습니다&quot; — 세조가 '무동처사'를 내린 나무</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14/</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14/</guid><category>모과나무</category><pubDate>Thu, 15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충북 청주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의 모과공원 안에 있는 연제리 모과나무는 2000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조선 세조 초 이곳에 은거하던 서산류씨 류윤은 세조의 출사 요구에 이 모과나무를 가리키며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전했고, 이에 세조가 친히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어서를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국가유산포털은 이 나무를 '무동처사' 어서를 하사한 유서 깊은 나무로, 생물학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설명한다. 백과는 수령을 약 500년으로 추정하며, 2013년 적성병이 발병해 피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양호한 편이라고 쓴다. 모과는 과일 중 가장 못생겼다 하여 흔히 못생긴 사람을 모과에 비유하며, 허균의 『도문대작』은 경북 예천을 모과의 주산지로 기록했다.</description></item><item><title>봄꽃 산벚나무, 팔만대장경 경판이 되다</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12/</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12/</guid><category>야산벚나무</category><pubDate>Wed, 14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대장도감을 설치해 다시 새긴 것이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이며, 새기는 일은 경남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이 맡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경판의 재질로 산벚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돌배나무·단풍나무 등 조각하기 쉬운 나무들이 쓰였다고 기록한다. 경판은 세로 24cm, 가로 68~78cm, 두께 2.5~3cm, 무게 3kg 정도이며 보존을 위해 양면에 옻칠을 하고 네 귀퉁이에 금속판을 붙였다. 경판은 강화도에서 선원사를 거쳐 1398년(태조 7) 5월 해인사로 옮겨졌고, 일제강점기 조사로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을 포함해 81,258장이다. 대장경판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description></item><item><title>신사임당과 율곡이 가꿨다는 매화 — 오죽헌 율곡매</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13/</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13/</guid><category>매실나무</category><pubDate>Wed, 14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강릉 오죽헌 율곡매는 오죽헌이 들어설 무렵인 1400년경 함께 심겼다고 하며(안내판은 세종 22년(1440)경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함),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신사임당은 고매도·묵매도 등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梅窓)이라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했다. 율곡매는 꽃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로 2007년 10월 8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같은 날 지정된 장성 백양사 고불매는 원래 옛 대웅전 앞뜰에 있었으나 1864년 대홍수로 절을 옮겨 지을 때 홍매와 백매 한 그루씩을 옮겨 심었고 지금은 홍매만 남았으며, 1947년 만암 대종사가 '고불총림'을 결성할 때 고불의 기품을 닮았다 하여 '고불매'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되었다고 기록한다.</description></item><item><title>'슈퍼 제너럴리스트'의 역설 — 미국 동부 숲을 차지한 레드메이플</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9/</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9/</guid><category>참꽃단풍</category><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미국 농무부(USDA NRCS) 식물 가이드는 레드메이플(참꽃단풍)을 북미 동부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또 동부 낙엽수림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풍부한 종 가운데 하나이며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가장 풍부한' 종이라 하고, 가장 다양한 입지에서 자라는 '슈퍼 제너럴리스트'라고 부른다. 같은 가이드는 생태학자 에이브럼스(Abrams 1998)의 글을 인용해 이 나무가 다음 세기에도 상층 우점도를 아마 계속 늘려 미국 동부 숲의 역사적 우점 수종들을 널리 대체할 것이라 전하고, 산불 억제가 확산에 크게 기여했지만 어느 한 형질도 성공의 원인은 아니라고 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기록에 따르면 에이브럼스의 1998년 BioScience 논문 제목은 '레드메이플 패러독스: 동부 숲에서 레드메이플이 널리 확장된 것을 무엇이 설명하는가?'다. 수액은 설탕단풍의 약 절반 당도지만 메이플 시럽 생산에 쓰이기도 하고, 개척민은 수피 추출물로 염료를 만들고 수피 타닌에 황산철을 더해 잉크를 만들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는 1890년대 학교 어린이 투표로 뽑힌 이 나무를 1964년 공식 주목으로 채택했다.</description></item><item><title>천연기념물이 된 첫 단풍나무 — 고창 문수사 단풍숲</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8/</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8/</guid><category>단풍나무</category><pubDate>Mon, 12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문화재청은 2005년 9월 9일 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 주변 단풍나무숲을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하면서 '단풍나무는 지금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가 없어' 이 숲의 역사성·경관적 가치·생태학적 대표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문수산(일명 청량산) 중턱 문수사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약 80m 진입로 좌우에 수령 100~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가 자라며, 흉고둘레 2.96m에 이르는 노거수도 있다. 보도자료는 이곳이 백제 의자왕 4년(644) 지어진 문수사의 사찰림으로 보호되어 온 숲이라 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추측된다'고 적는다. 백과는 경칩일에 단풍나무를 베어 나오는 물을 마시면 위장병 등에 효험이 있다 하여 단풍나무를 베었다는 민속을 전하며, 우리나라 신목 가운데 단풍나무에 얽힌 전설이 없는 것은 일본사람들이 거의 베어 가져갔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록한다.</description></item><item><title>멸종된 줄 알았던 '물 전나무', 담양 길에 서기까지</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7/</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7/</guid><category>메타세쿼이아</category><pubDate>Sun, 11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하버드대 아놀드수목원은 메타세쿼이아(영어 Dawn Redwood)가 수백만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대체로 여겨져 왔다고 소개한다. 1941년 겨울 국립대 임학과 T. Kan 교수가 후베이에서 쓰촨으로 가던 길에 완현 모다오치(Mau-tao-chi) 길가에서 현지인들이 'shui-sa', 곧 '물 전나무(water fir)'라 부르는 큰 낙엽수를 보았다. 미주리식물원은 이 나무가 화석 기록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1941년 야생 개체가 발견되었다고 기록한다. 1948년 1월과 2월 두 차례 종자가 아놀드수목원에 도착했고, 수목원은 일부를 남긴 뒤 최소 600봉지로 나눠 세계의 정원·수목원·대학에 보냈다. 한국에서는, 1972년 담양군이 국도 24호선 군청~금성면 원율삼거리 5km 구간에 5년생 1,300본을 심어 지금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만들었다(한국관광공사). 서울신문(2000-10-02)은 이 길이 70년대 초 내무부의 시범 가로수길로 지정됐고, 2000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광주~순창 도로 확장으로 담양읍 남산리~학동리 약 1km 가로수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주민 반발로 벌목 대상이 178그루에서 200여m 구간 64그루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2018)는 이때 노선을 바꿔 114그루를 지켰고, 2009년 담양~순창 4차선 확장 때도 벌목 예정 37그루가 주민·환경단체 협의로 4그루로 줄었다고 정리한다.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2010)은 주민들이 '메타세쿼이아 살리기 군민연대'를 꾸려 숲을 지켰다고 썼다. 이 길은 2002년 거리숲 부문 대상,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을 받았고(경향신문 2015), 2015년 가로수길로는 처음 국가 산림문화자산이 됐다 — 산림청은 '우리나라 최초로 양묘에 의해 생산된 묘목으로 가로수 숲길을 조성'한 의의를 들었다. 2011년 담양군이 학동마을 앞 1.8km(470그루)에 입장료를 매기는 조례를 예고하자 관리 필요성과 '보행로를 돈벌이로 삼는다'는 반발이 맞섰다(서울신문). 한국 도입 경로는 출처마다 다르다: 담양 길 안내판은 현신규 박사를, 전남대 안내판은 1952년 정하도 씨가 일본에서 들여온 묘목 중 한 그루를 이 길의 모수로 소개한다(황호택 칼럼). 영화 '화려한 휴가'가 이 길에서 시작한다(같은 칼럼).</description></item><item><title>세 느티나무 정자 '삼괴정' — 800년 마을을 지킨 괴산 오가리 당산목</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6/</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6/</guid><category>느티나무</category><pubDate>Sat, 10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충북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우령마을 어귀에는 마을 사람들이 '삼괴정(三槐亭)', 곧 '세 느티나무 정자'라 부르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서울신문 고규홍 칼럼(2011)은 이 터에 우령마을이 들어선 것이 800년 전이며 마을을 세운 옛 사람들이 개울가에 나무를 심었다고 쓰고, 세 그루는 마을 어귀에 큰 삼각형의 꼭짓점마다 한 그루씩 서 있고, 가장 아래의 하괴목과 중간의 상괴목 두 그루를 묶어 천연기념물이 되었으며, 조금 높은 곳의 나머지 한 그루는 규모가 작고 생육 상태가 떨어져 제외되었다고 전한다. 국가유산포털은 지정일을 1996년 12월 30일로 기록하고, 나이를 지정일 기준 약 800살로 추정하며, 정자는 없지만 세 그루의 모습이 정자 같아 삼괴정이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지정 사유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민속적·생물학적 가치다. 오랫동안 마을은 하괴목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칼럼 기준 하괴목은 키 19m·가슴높이 둘레 9.4m로, 줄기가 2m쯤 높이에서 셋으로 갈라지고 그중 가장 굵은 줄기는 오래 전 부러져 외과수술로 메웠다. 하괴목 줄기 앞에는 돌 제단이 놓이고 금줄이 둘러쳐 있다. 한 주민은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 당산제를 지내며, 천연기념물이라 제사음식·제사용품을 나라에서 보태준다고 말했다. 국가유산포털과 관광공사는 매년 정월 대보름 하괴목 아래에서 성황제(안내판 표기 '서낭제')를 지낸다고 소개한다. 칼럼은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품새로 사방에 고르게 가지를 편 상괴목(칼럼 기준 키 25m·둘레 8m)을 우리나라 느티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칼럼 속 마을 노파는 '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별다른 이야기는 없어도' 마을 사람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 나무라고 말했다. 칼럼 작성 5년쯤 전 주변 비탈밭은 보호구역으로 정비되어 주차장·간이 화장실과 나무 가까이 작은 정자가 마련됐다. 칼럼은 같은 느티나무라도 단풍 빛이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쓴다.</description></item><item><title>24년의 부탁, 소각 결정이 난 2,000그루, 고향으로 돌아간 가지 — 워싱턴 벚나무</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5/</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5/</guid><category>소메이요시노벚나무</category><pubDate>Thu, 08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연표에 따르면 작가·여행가 엘리자 스키드모어는 1885년 첫 일본 방문 뒤 포토맥 강변에 일본 벚나무를 심자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24년 동안 새 관리책임자가 올 때마다 같은 제안을 했다. 1909년 그는 돈을 모아 벚나무를 기증하려는 계획을 영부인 헬렌 태프트에게 편지로 보냈고, 일본에 살았던 태프트는 이틀 뒤 나무를 약속받았다고 답했다. 다음 날 일본 화학자 다카미네 조키치가 2,000그루 추가 기증을 제안했고 도쿄시 이름으로, 오자키 유키오 시장의 지지 속에 보내기로 했다. 1910년 1월 도착한 2,000그루는 해충·선충과 병이 발견돼 미국 재배 농가 보호를 위해 태프트 대통령이 소각에 동의했다. 일본 측은 결의와 선의로 받아들였고, 아라카와 강변 벚나무의 접순을 이타미시의 대목에 접붙인 3,020그루를 다시 보냈다. 1912년 3월 26일 도착한 3,020그루 중 1,800그루가 소메이요시노였고, 3월 27일 헬렌 태프트와 친다 자작부인이 타이들 베이슨 북안에 두 그루를 심었다. 식이 끝나자 영부인은 친다 부인에게 &quot;아메리칸 뷰티&quot; 장미 꽃다발을 건넸고, NPS는 몇 사람만 지켜본 이 소박한 식에서 전미 벚꽃축제가 자라났으며 그 두 그루가 지금도 서 있고 밑동 가까이 큰 청동 기념판이 있다고 소개한다. 1915년 태프트 전 대통령은 꽃산딸나무를 답례로 보냈고 1935년 첫 벚꽃축제가 열렸다. 1952년 2차대전 중 쇠락한 아라카와 강변 벚나무 숲(grove)의 복원을 일본이 요청하자 NPS가 후손 나무의 접순용 가지(budwood)를 도쿄로 보냈고, 1982년 홍수 뒤 일본 요시노 숲 복원에 꺾꽂이 가지 약 800개, 2011년 살아 있는 1912년 나무에서 받은 번식용 가지(propagates) 약 120점이 일본으로 갔다. 2018년 국립수목원은 제주 자생 왕벚나무가 도쿄·워싱턴의 일본 왕벚나무와 뚜렷이 구분되는 식물이라고 발표했다(경향신문 보도).</description></item><item><title>가지를 들어 길을 낸 소나무 — 정이품송, 600년의 상처와 후계목</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2/</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2/</guid><category>소나무</category><pubDate>Wed, 07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선 정이품송은 수령 약 600살로 추정되는 소나무다(국가유산청 기준 높이 17.0m·가슴높이 둘레 4.9m, 1962년 천연기념물 지정). 국가유산청 해설은 세조 10년(1464) 법주사 행차 때 가마가 처진 가지에 걸리자 세조가 &quot;가마가 걸린다&quot;고 말했고 소나무가 가지를 위로 들어 길을 내주었다는 이야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세조가 그 충정을 기려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고 소개한다. 원래 삿갓이나 우산을 편 모양이었으나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 피해로 대규모 방충망을 씌웠고, 1993년 강풍에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모습이 많이 상했다. 이후 2007·2010년 돌풍과 2012년 태풍 볼라벤에도 가지를 잃었고 2014년 큰 가지를 받치는 지지대가 설치됐다(중앙일보 2021). 속리산 남쪽 서원리의 소나무(1988년 천연기념물)는 외줄기로 곧게 선 정이품송을 남성적으로, 우산처럼 퍼진 자신을 여성적으로 빗대 '정부인송'이라 불리며, 2002·2003년 정이품송 꽃가루로 가루받이해 후계목을 기르는 사업이 시도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1년 정이품송을 아비로 한 혼례식으로 장자목을 생산했고, 보은군은 2020년부터 국가유산청 승인을 받아 후계목 340그루를 분양했다(2024 보도). 2024년 국립산림과학원은 정이품송으로 소나무 표준 유전체를 해독했다.</description></item><item><title>드라마가 현실이 된 당산나무 — 창원 북부리 '우영우 팽나무'</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3/</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3/</guid><category>팽나무</category><pubDate>Wed, 07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경남 창원 대산면 북부리 동부마을의 탁 트인 언덕 꼭대기에 선 팽나무는 수령 약 500년, 높이 16m, 가슴둘레 6.8m, 수관폭 약 27m로 팽나무 가운데 비교적 크고 오래된 나무다(국가유산청). 언덕에서는 낙동강을 경계로 북쪽 하남읍과 남쪽 대산면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농경사회에서 동부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고, 주민들은 신목으로 여겨 당산제를 90여 년간 이어 왔다. 1934년 홍수 때 마을 주민과 팽나무가 함께 찍힌 사진이 동아일보(1934.11.24)에 실리기도 했다.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8회에 '소덕동 팽나무'로 등장했는데, 드라마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며 위기에서 마을을 지켜 낸다.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2022년 7월 25일 실제 지정조사 계획을 밝혔고, 당시 천연기념물 팽나무 노거수는 예천 황목근과 고창 수동리 팽나무 2건뿐이었다. 같은 해 10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마을당제라는 무형유산과 팽나무라는 자연유산이 결합한 대표적 국가유산으로 평가됐다. 지정조사 단계부터 문화재청·창원시·마을 주민이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관람객 증가에 따른 주민 불편 해결과 생육환경을 고려한 보호책 마련에 노력한 점도 지정 때 인정받았다.</description></item><item><title>천 년을 산 용문사 은행나무</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1/</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1/</guid><category>은행나무</category><pubDate>Tue, 06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경기 양평 용문사 경내의 은행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국가유산포털 지정일 1962.12.07). 경기역사문화유산원 해설은 수령을 1,100년으로 추정하며 생존한 국내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높이 41m·가슴높이 줄기둘레 14m로 소개한다. 전승으로는 신라 마의태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꽂혀 살아났다고도 전해지고, 조선 세종 때 당상직첩 벼슬이 내려졌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모두 공식 해설이 전승으로 소개하는 이야기다.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절에 불을 질렀으나 나무만 해를 면하고, 소실된 사천왕전을 대신하는 천왕목의 역할을 해 왔다고도 전해진다. 해설은 나무가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고 줄기가 약12m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다고 설명한다.</description></item><item><title>'대학나무'와 앞니 품앗이 — 구례 산수유 농업(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title><link>https://gruan.co.kr/stories/ch004/</link><guid>https://gruan.co.kr/stories/ch004/</guid><category>산수유</category><pubDate>Mon, 05 Oct 2026 00:00:00 GMT</pubDate><description>구례군은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고도 불렀다고 하고, 농촌진흥청 웹진은 벼농사보다 수익이 높은 산수유나무가 자녀 대학 등록금도 책임질 수 있는 '대학나무'였다고 쓴다. 씨와 과육을 분리하는 일은 마을의 어린이와 여인들이 품앗이로 했고, 옛날에는 앞니로 과육만 까내 그릇에 뱉었다고 한다. 구례군은 앞니가 닳은 산동 처녀를 다른 지역에서도 알아보았고 남원·순천 등지에서 며느리로 들이려는 경쟁이 치열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군락지 돌담은 경작지 개간 때 쌓아 나무와 밭의 경계, 수분 증발 억제, 태풍 지지대 역할을 한다. 구례 산수유 농업은 2014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3호로 지정됐고(집·농경지 주변 산수유 경관, 생물 서식지, 시비와 씨 제거 등 전통농법), 2025년 11월 기준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빨간 열매가 맺히는 매년 11월 산동면 일원에서 열매 축제가 열린다.</description></item></channel></rss>